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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ram Deo

고난 주간의 월요일, 성전을 깨끗하게 하신 예수님

by 위즈덤바이어 2023. 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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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서울 근교에는 벚꽃이 만개했다. 서울지역에서 대표적인 벚꽃 축제지인 여의도 윤죽로를 비롯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벚꽃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다. 

봄은 이렇게 꽃들이 만개하면서 생명이 움트는 시작을 알린다. 꽃이 먼저 피어나고 그 후에 잎이 돋으니 봄이 아름다운 것은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꽃들 때문이기도 하지만 화무십일홍이라고 그 꽃이 지면 아름다운 잎들이 돋아 나고 곧이어 열매가 맺히는 생명으로 충만한 여름이 도래하기 때문일 것이다. 

photo by wisdom-buyer

이제는 한국인들도 흔히 먹을 수 있는 무화과. 이름은 꽃이 피는 과정을 건너 띄고 열매를 맺는다는 뜻이지만 실제 무화과는 열매 안에서 꽃이 피는 과실로 중동에서는 흔히 먹을 수 있는 과일이다. 고난 주간의 월요일, 다시 베다니를 출발해 예루살렘으로 향하시는 예수님이 한 무화과나무를 보신다.

 

1. 잎사귀만 무성한 무화과나무

고난 주간의 첫 날인 종려주일, 예수님은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다가 다시 베다니로 돌아가셨다. 

그리고 그 다음 날, 다시 예루살렘으로 나가신다. 

이튿날 그들이 베다니에서 나왔을 때에 예수께서 시장하신지라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예수께서 나무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마가복음 11:12-14)

 

이 말씀은 주로 열매가 없는 무화과에 초점이 맞춰져 열매 없는 삶을 사는 성도들에 대한 경고와 가르침을 주는 내용으로 목사님들의 설교에 많이 인용된다. 그런데 나는 이 글의 문맥을 천천히 읽다 보면, 뭔가 불편해지곤 했다.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무화과의 때가 아님'을 알고 계셨으면서도 다짜고짜 열매가 없다는 이유로 저주하시는 모습은 어떻게 설명되어야 할까?

 

2. 성전을 깨끗케 하신 예수님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후에,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신다. 때는 바야흐로 유월절이 바로 임박한 때. 모든 지역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이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모여드는 시기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정결한 예물을 하나님께 바쳐야 한다는 것. 정결한 예물이 금이나 은같은 변함이 없는 것들이면 참 좋겠지만, 사실 흠 없는 양이나 염소, 송아지 같은 살아있는 제물들이었다. 머나먼 길을 이동하며 흠이 생길지 몰라 당시 성전에서는 살아있는 각종 제물들을 파는 장사치들이 판을 치고 있었다. 

 

그들이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시며 아무나 물건을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님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으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매 (마가복음 11:15-17)

 

고난 주간의 월요일, 예수님은 성전에 들어가서 장사치들을 내쫓으시며 성전을 정결케 하신 후, 다시 베다니로 돌아가신다.

이요한 화백의 화보집, 출처:네이버 블로그

 

3. 예수님이 회복하실 진정한 천국의 모습

왜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입성하면서 이 두 가지 일을 하신 것일까? 예수님께서는 왜 제자들이 다 듣는데서 이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것일까? 예수님은 왜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모두 내쫓았던 것일까?

 

지금 예수님이 어떤 시기에 있는지,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지, 이 땅에 오셔서 무엇을 이루려 하셨는지에 대해 안다면 조금은 더 이해하기 수월할 것이다. 예수님은 지금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부터 시작되었던 하나님과의 단절, 그로 인한 모든 단절을 회복하시는 순간에 와 있다. 너무 오랫동안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고 느끼지 못했던 우리의 원래 창조의 모습을 회복해야 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처음 제자들을 만나서 교육을 시키실 때는 예수님은 이 회복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제자들이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며 메시아이심을 어렴풋이 깨닫고 나서야 본인이 정말 하나님이자 메시아이시며 장차 고난을 받으실 것을 말씀해 주신다.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마태복음 16:21)

 

이 '이 때로부터'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가셔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질문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그 유명한 고백,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를 들은 때를 의미한다. 

 

정작 늘 함께 다녔던 제자들도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주님이 그리스도, 즉 메시아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을 고백한 순간부터 예수님은 하나님이 예비하신 빈틈없는 고난과 구원의 계획을 말씀하시기 시작하신 것이다. 즉, 회복해야 할 창조의 모습을 설명해 주신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계획하시는 구원과 회복은 무엇일까? 고난 주간의 월요일과 화요일의 주님의 행보에서 우리는 어렴풋이 그 회복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화요일 아침, 다시 베다니에서 예루살렘으로 향하실 때 제자들은 예수님이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마른 것을 보았다.

 

그들이 아침에 지나갈 때에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마른 것을 보고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여짜오되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마가복음 11:20)

 

인간이 사는 세상에서 무화과는 철을 따라 과실을 맺는 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어떠한가?

에스겔서와 요한계시록에 묘사되어 있는 천국의 모습을 살펴보면 살짝 설명이 될 것 같다.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과실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열매가 끊이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열매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를 통하여 나옴이라 그 열매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재료가 되리라
(에스겔 47:12)


또 그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요한계시록 22:1-2)

 

즉, 성경에 묘사되는 천국에는 열매 맺는 철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달마다 열매를 맺는 것이 정상이라는 것이다. 

 

정상을 회복하시려는 노력은 성전을 정결케 하심에서도 볼 수 있다. 

성경에서는 예수님이 성전을 정결케 하시는 작업을 두 번 하신 것으로 보인다. 마태, 마가, 누가복음에서는 고난 주간의 기간에 하신 것으로 언급되어 있으나 요한복음에서는 공생애 시작 후, 첫 번째 유월절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을 때라고 기록하고 있다.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요한복음 2:13-16)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요한복음 2:19-21)

 

이 사건들로 미루어 보아, 우리가 원래 창조의 모습으로 살아야 할 것을 주님께서 이르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제야 나는 무화과나무에 대한 나의 비뚤어진 마음을 풀 수 있었다. 예수님이 그렇게 십자가에서 갖은 모욕과 폭력을 당하고 급기야 돌아가시기까지 하시면서 이루셔야 했던 일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마가복음 11장은 우리 기독교 신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기도의 원칙을 가르쳐 주는 장이기도 하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마가복음 11:22-24)

 

무턱대고, 덮어놓고 믿으면 그대로 된다는 것이 아닐 것이다. 하나님의 회복을 믿고, 원래 창조의 의도와 창조의 모습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바로 믿을 때, 우리는 구하는 것을 받게 되는 축복을 받는 것이리라. 

 

끝까지 우리의 구원을 이루기 위해 성실하시고 미쁘셨던 예수님. 다시 한번 그분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진리를 깨닫고 감사와 행복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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