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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ram Deo

종려주일, 예수 그리스도의 예루살렘 입성

by 위즈덤바이어 2023. 4.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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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종려주일이다. 종려주일은 예수님의 지상 사역의 마지막 일주일을 시작하는 주일이자 예수님께서 고난을 받으시기 위해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많은 사람들이 종려나무 잎사귀를 가지고 나와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하며 환호했기 때문에 종려주일이라 부른다. 

 

매일 말씀 묵상을 올리는 시작으로 고난 주간의 하루하루를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며 고난의 의미와 부활의 감격을 다시 한번 새겨본다. 

<종려주일>, 작가 vikayatskina, 출처 : Freepik

1. 종려주일, 고난 주간의 시작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은 3년 반이라고 한다. 예수님의 사생애에 대한 기록은 신약성경 사복음서에도 많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 누가복음에서만 살짝 볼 수 있는 정도니 말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공생애, 그러니까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후 시작되는 공생애는 3년 반 정도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요한복음에서 매년 한 번씩 있는 유월절에 갈리리 사람인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는 말씀이 삼 회 정도 나오기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요한복음 2:13, 6:9, 12:12)

 

그런데 예수님의 생애를 기록하고 있는 사복음서에서 이 마지막 한 주간에 대한 기록이 차지하고 있는 분량은 상당하다. 

예수님의 지상에서의 전 생애 중 사생애 30년은 거의 할애하지 않았다고 해도, 3년 반 가량의 공생애 중 마지막 일주일에 대한 기록은 상당한 분량을 차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예를 들어 마가복음의 경우, 전체 16장의 분량 중 11장부터 예수님의 고난을 받기 위해 마지막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부분을 다루고 있으니 거의 40%의 분량을 고난 주간에 할애하는 셈이다. 

 

그만큼 예수님의 전 생애에 있어서 인류의 구원을 완성시키기 위해 이 고난 주간이 중요한 것이다. 

 

종려주일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모습을 묘사해 준다. 

 

그 이튿날에는 명절에 온 큰 무리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는 것을 듣고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요한복음 12:12-13)

 

 

2. 기적을 보고 예수를 환호한 군중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호산나! 이스라엘의 왕이시여"라며 환호했는데, 며칠이 안되어 바로 빌라도 앞에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친다. 대체 사람 마음이 이렇게 변덕스러운 것일까? 이들은 왜 이렇게 모여있던 것일까?

 

이들이 모인 이유에 대해서는 다른 복음서 보다도 요한복음의 기록을 따라가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신약성경의 시작인 마태, 마가, 누가복음을 가리켜 공통적인 관점을 가졌다 하여 공관복음이라고 한다. 앞의 세 복음서는 기록된 시기도 비슷하고 서로 영향을 많이 주고받으며 기록되어 유사한 면도 많다. 하지만 예수님의 제자 중 하나인 요한이 쓴 요한복음은 저술 시기도 앞의 세 복음서와는 좀 더 늦게 기록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요한복음에는 앞의 세 복음서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은 하나의 사건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사건이다. 

요한복음 11장에 기록된 죽은 나사로의 부활 사건은 장차 예수님의 부활을 상징적으로 의미하기도 하지만 유대인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준 사건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바로 전날, 예수님은 나사로가 다시 살아났던 베다니에 도착하셨다. 베다니에서 투숙하고 계셨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때 많은 사람들이 이미 예수님을 보려고 몰려들었다. 

 

유대인의 큰 무리가 예수께서 여기 계신 줄을 알고 오니 이는 예수만 보기 위함이 아니요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도 보려 함이러라 대제사장들이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모의하니 나사로 때문에 많은 유대인이 가서 예수를 믿음이러라 (요한복음 12:9-11)

 

3. 동상이몽

2000년 전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소식을 들은 유대인들에게 동양에서 쓰는 동상이몽이라는 말을 적용하는 것이 맞나 싶지만 이 만큼 이 상황을 잘 설명하는 말은 없는 것 같다. 예수님은 지금 아버지 하나님께서 태초부터, 인류의 범죄가 시작된 그날부터 계획된 인류를 향한 구원 사역의 완성을 위해 움직이고 계신다. 

 

하나님의 계획은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치밀하다. 그것은 수많은 제물로는 씻을 수 없는 인류의 죄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형을 통해 단번에, 확실하게 없애 인류를 다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예수님의 오병이어 사건 때 한 번의 모임과 흩어짐을 경험했던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살리셨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한번 정치적 목적의 믿음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유월절은 이스라엘에게 있어 가장 큰 명절이다. 이미 유대 땅에 있지 않은 사람들 조차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다른 나라에서 예루살렘으로 모여드는 큰 절기다. 그러다 보니 당시에 헬라에서 온 사람들 조차 예루살렘에 와서 예수님에 대해 수소문 하기 시작했다. 

 

 명절에 예배하러 올라온 사람 중에 헬라인 몇이 있는데 그들이 갈릴리 벳새다 사람 빌립에게 가서 청하여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가 예수를 뵈옵고자 하니 (요한복음 12:20-21)

심지어 헬라에서 온 사람들 조차 예수님을 만나고자 했을 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이것이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요한복음 12:24-25)

Photo by Yueshuya, 출처: Pixabay

다른 복음서에 보면, 심지어 제자들 조차도 예수님께서 어느 순간부터 끊임없이 자신이 고난 받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실 것을 이야기했지만 뭔가 정치적으로 예수님이 왕으로 등극하실 것을 꿈꾸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예수님은 한 번도 자신의 구원 사역이 인간들이 생각하는 정치적인 방법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


고난 주간의 시작인 종려주일 아침에 문득, 이번 주가 고난 주간이라는 사실이 깨달아졌다. 여전히 달라고 기도하는 나의 모습 속에 참으로 한 순간도 한 시간도 깨어있을 수 없느냐라고 베드로를 책망하셨던 주님의 말씀이 생각나며, 이 주간 만이라도 주님의 관점에서 고난과 부활과 그로 인한 나의 구원의 사역을 잠잠히 묵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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