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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ram Deo

[마태복음]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마태복음 1:1-17)

by 위즈덤바이어 2023. 4.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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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에서 사용하는 성경은 총 66권으로 구약 39권과 신약 27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신약 27권을 시작하는 책들은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실 때의 모습을 다루고 있는  네 권의 복음서다. 각 복음서는 저자의 이름을 붙였으며 지어진 순서는 마가복음, 마태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순이다. 각 복음서의 저자들은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예수님의 모습에 맞게 내용을 구성했다. 마가복음은 종으로 오신 예수님, 누가복음은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 요한복음은 하나님이신 예수님. 그리고 마태복음은 구약성경에서 계속 예언하고 있는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이다. 아마도 그래서 마가복음보다 뒤에 기록된 마태복음을 구약을 마치고 신약을 여는 성경으로 배치한 것 같다. 

 

이런 관점에서 마태복음을 묵상하면 마태복음은 바로 구약시대 내내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던 언약의 성취, 말씀의 성취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마태복음을 따라가며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만나보자. 

 

1.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고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
람은 아미나답을 낳고 아미나답은 나손을 낳고 나손은 살몬을 낳고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솔로몬은 르호보암을 낳고 르호보암은 아비야를 낳고 아비야는 아사를 낳고
아사는 여호사밧을 낳고 여호사밧은 요람을 낳고 요람은 웃시야를 낳고
웃시야는 요담을 낳고 요담은 아하스를 낳고 아하스는 히스기야를 낳고
히스기야는 므낫세를 낳고 므낫세는 아몬을 낳고 아몬은 요시야를 낳고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에 요시야는 여고냐와 그의 형제들을 낳으니라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에 여고냐는 스알디엘을 낳고 스알디엘은 스룹바벨을 낳고
스룹바벨은 아비훗을 낳고 아비훗은 엘리아김을 낳고 엘리아김은 아소르를 낳고
아소르는 사독을 낳고 사독은 아킴을 낳고 아킴은 엘리웃을 낳고
엘리웃은 엘르아살을 낳고 엘르아살은 맛단을 낳고 맛단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그런즉 모든 대 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까지 열네 대요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대더라
(마태복음 1:1-17)

 

성경을 처음 읽는 분들에게 구약성경의 방대한 내용이 너무 시작하기 어려울 수 있어 주로 신약을 먼저 읽어보시라 권하게 된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처음 마태복음을 펼치면 '누가 누구를 낳고'의 무한반복처럼 보이는 예수님의 계보가 나와 이름들도 익숙하지 않은 분들이 당황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1절부터 17절까지 일뿐이니 두 눈 부릅뜨고 빨리 읽어서 지나간다면 다음 내용부터는 조금은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이미 예수님의 계보에 어느 정도 익숙한 성도라면, 예수님께서 구약 성경에서 말씀하신 '메시아'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저자인 마태도 마태복음의 첫 시작을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라고 시작한다. 

 

마태복음에 나오는 위의 계보만으로도 구약에서 예수님의 탄생까지 이스라엘의 역사를 간략하게 살펴볼 수 있다. 먼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라고 말하는데, 즉 아브라함부터 왕국이 시작되기까지의 시기를 열네 대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사로잡히기 까지가 열네 대, 즉 이스라엘의 왕국 시대, 다윗과 솔로몬의 통일왕국에서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의 분열왕국까지를 이야기한다. 마지막으로 바벨론에서부터 예수님의 탄생까지 열네 대. 즉, 바벨론에서 해방되어 다시 예루살렘으로 복귀하고 바벨론, 바사 즉 페르시아, 헬라, 로마 제국에 이어지기까지 압제의 역사를 가지고 있었던 이스라엘의 역사를 이야기한다. 

 

2. 예수님의 계보에 이름을 올린 여인들

마태복음 1:1-17절에는 아브라함, 다윗을 비롯하여 구약성경을 읽을 때 유용한 다수의 이름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성경이 기록된 시대적 배경을 생각할 때, 이렇게 귀한 계보에 여성의 이름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의미 깊은 일이다. 그래서 이 여성들은 어떤 여성들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예수님의 계보에 이름을 올릴 수 있을 법한 여성들이 있다면 대표적으로는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있을 것이다. 아니면 야곱을 낳은 이삭의 아내 리브가도 조상으로서 큰 의미가 있으니 이름을 올릴 법하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은 모두 계보에 올라가 있지 않고 우리가 볼 수 있는 다섯 명은 인간적인 시각으로 그렇게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는 사람들은 아니다. 


먼저 다말. 다말은 사실 야곱의 넷째 아들인 유다의 며느리였다.

아브라함-이삭-야곱으로 내려오던 계보가 야곱에서 열두 명의 아들로 나뉘었는데 그중에서도 넷째 아들인 유다로 이어진다. 애굽에서 죽기 전 자녀들에게 마지막으로 유언을 했던 야곱은 메시아의 탄생이 유다족속으로 부터 나올 것을 언급했다.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버지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갔도다
그가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창세기 49:8-10)

 

그런 유다가 자신의 며느리인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았다고 마태복음은 말하고 있다. 다말은 사실 유다의 장자였던 엘의 아내다. 그러나 엘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함으로 죽게 되었다. 이스라엘의 전통상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동생이 형수를 아내로 맞아 형의 대를 잇고 홀로 살게 된 형수를 보호해야 하는 책임이 있지만 이를 거부한 둘째 아들 오난 역시 여호와 보시기에 악해 죽게 된다. 막내아들 셀라까지 잃고 싶지 않았던 유다가 다말을 친정에 보내 막내가 자라기까지 기다리라고 했으나 함흥차사다. 그러던 중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시아버지 유다가 상중에 있다는 소식을 들은 다말이 창녀로 분장해 시아버지 유다와 동침해 낳은 쌍둥이 아들들이 바로 베레스와 세라였다. 

유다가 그것들을 알아보고 이르되 
그는 나보다 옳도다 내가 그를 내 아들 셀라에게 주지 아니하였음이로다 하고 
다시는 그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더라
(창세기 38:26)

두 번째 나오는 여성은 라합이다. 라합은 여리고 성에서 이스라엘의 정탐꾼들을 살려 주어 가족이 구원을 받았던 그 기생 라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침내 가나안 땅 문턱까지 와서 이제 가나안 땅을 차지하려고 했을 때, 첫 번째 성인 여리고를 무너뜨리기 위해 정탐꾼을 보냈다. 그 두 정탐꾼을 여리고 왕으로부터 보호해 준 여성이 바로 라합이다. 

 

또 그들이 눕기 전에 라합이 지붕에 올라가서 그들에게 이르러
말하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주민들이 다 너희 앞에서 간담이 녹나니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쪽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니라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로 말미암아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

그러므로 이제 청하노니 내가 너희를 선대하였은즉
너희도 내 아버지의 집을 선대하도록 여호와로 내게 맹세하고 내게 증표를 내라

그리고 나의 부모와 나의 남녀 형제와 그들에게 속한 모든 사람을 살려 주어
우리 목숨을 죽음에서 건져내라 

(여호수아 2:8-13)

 

두 명의 정탐꾼을 구해주는 라합, 출처:네이버블로그

 

라합은 여리고 땅에서 기생이었지만 여호와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 한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은 물론 자신의 가족들까지 살리게 되었으며 예수님의 계보에 이름을 올리는 사람이 되었다. 


세 번째 등장하는 여성은 모압여인 룻. 성경 룻기의 주인공이기도 한 룻은 가뭄으로 인해 모압 땅으로 이주했던 한 유다 가족의 둘째 며느리로 시아버지, 시아주버님 그리고 자신의 남편까지 모두 모압땅에서 죽어 시어머니 나오미와 함께 유다로 돌아온 여성이다. 유대인이었던 나오미는 자신의 며느리들인 모압사람 오르바와 룻에게 모압에 있기를 권했으나 둘째 며느리인 룻만은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르겠다고 간곡히 부탁했다.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야훼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룻기 1:16-17)

 

이 말씀만 본다면 룻은 흠잡을 데 없는 착한 며느리다. 하지만 룻의 출신이 모압사람이라는데 주목해야 한다. 모압과 암몬은 이스라엘이 출애굽을 할 당시 협조적이지 않고 오히려 저주를 시도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올 수 없었다.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그들에게 속한 자는 십 대뿐 아니라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신명기 23:3)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존경으로 모압땅을 떠나 멀리 유대땅가지 따라와 보아스의 아내가 된다. 


네 번째 여성은 우리아의 아내. 즉 솔로몬의 어머니인 밧세바다. 다윗의 인생을 따라가다 보면 정말 다윗처럼 의롭게 정직하게 하나님을 사랑하며 살아간 인물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런 다윗이 딱 두 번, 하나님께 크게 질책을 받고 큰 문제를 일으키는 죄를 짓는 데, 그중 하나가 바로 이 밧세바 사건이다. 다윗은 역대기에도 기록될 정도로 충성스러운 용사였던 자신의 부하 우리아가 전쟁 중에 있을 때, 목욕을 하고 있는 밧세바를 발견하고 밧세바를 범해 간음죄를 저지르는 것도 모자라 밧세바의 임신 사실 때문에 충성스러운 우리아를 전쟁터에서 죽게 하는 살인죄를 저지른다. 하나님께서 바로 나단 선지자를 통해 다윗을 꾸짖었을 때, 다윗은 바로 무릎을 꿇고 회개했다. 이렇게 밧세바와 다윗 사이의 첫 번째 아이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죽게 되었고 두 번째 아이인 솔로몬을 통해 하나님께서 왕위를 잇게 하셨다. 

 

 

3. 말씀의 성취를 믿은 마리아

레오나르도 다빈치, 수태고지 출처:Pixabay

예수님의 계보에 이름을 올린 다섯 번째 여인은 바로 마리아다. 마리아는 당시 요셉과 정혼한 사이였다. 누가복음에 따르면 좋은 소식을 전하는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방문해 예수님의 탄생을 예고한다. 당시, 남자와 동침하지 않았던 마리아에게 임신 소식은 돌에 맞아 죽을 수 있는 위험천만한 사건이었다. 하지만 가브리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고 실제 관습과 전통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던 마리아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게 된다.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누가복음 1:37-38)


 

예수님의 탄생은 인류에게 가장 큰 기쁜 소식이다. 그 소식을 인류가 받기 위해 하나님은 오랜 시간 준비하셨다. 그리고 그 준비의 과정에서 소위말하는 '금수저'들을 사용하신 것이 아니라 여전히 부족하고 죄인이고 자격 없는 자들을 주님은 사용하셨다. 오늘 그리스도의 계보에서 등장하는 여인들의 모습에서 알 수 있는 면면들이 우리들에게 큰 용기를 주는 것도 이 때문이리라. 그러나 이 여성들에게는 하나 주목할 것이 있다. 바로 그들의 믿음이다.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은 그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누가복음 1:45)

마태복음이 예언의 성취, 말씀의 성취라고 했는데, 그래서인지 자신들의 자격, 시대적 상황, 환경적 상황 등을 고려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은 여성들을 통해 주님의 역사는 완성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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