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 거리로 삼을지어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
진실로 악을 행하는 자들은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은
땅을 차지하리로다
잠시 후에는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 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
그러나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
(시편37:3-11)
매일 성경을 읽다 보면 다음 읽을 차례에서 살짝 설레는 기분이 드는 경우가 있다. 성경을 읽고 있는 많은 분들에게 인생 시편, 혹은 암송하고 있는 시편들이 있을 텐데, 가장 대표적으로 시편 23편이 그럴 것이다. 그리고 시편 1편을 좋아하는 분들도 많이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 당연히 대다수 성경을 읽는 분들이 즐겨 읽으시는 시편 1편, 23편, 91편 등의 시편들 뿐 아니라 다윗이 지은 시편 37편을 특히 더 좋아한다. 때때로 성경을 읽는 중에 매일 한 번씩은 37편을 읽으며 묵상하는 주간을 갖기도 할 정도로 사랑하는 시편이다. 이번 역시 시편 37편을 펼치기 전부터 너무 기대하는 마음과 설레는 기분으로 시작했다.
이번에 37편을 읽으며 유독 눈이 갔던 구절은 3절이다. 보통은 4-5절에 밑줄을 해놓은 분들이 많을 텐데, 이번에는 3절에 눈이 갔다. 특히 '땅에 머무는 동안'이라는 구절에 눈이 갔다. 오늘의 묵상은 이 '땅'에 집중해보려고 한다.
1. 온유한 자가 땅을 차지하리라.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땅을 인간에게 주셨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 거리가 되리라
(창세기 1:28-29)
다만, '땅을 정복하라'는 말씀이 땅을 파괴해도 된다는 말씀이 아님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지구온난화나 기후변화 등의 문제는 하나님이 맡기신 땅을 잘 돌보지 않은 인간에 의한 문제임을 기억해야 할 것 같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라'라고 하시면서 땅을 정복하는 모습을 전쟁을 하는 장수에 비유하시지 않고 온유한 자가 땅을 차지한다고 말씀하셨다. 이는 산상수훈으로도 유명한 마태복음 5장에서도 이미 언급되고 있는 말씀이지만 오늘 시편 37편에도 언급되는 말씀이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마태복음 5:5)
그럼 땅을 차지하려면 부동산 투자를 해야 할까? 성경에서 말하는 의미는 그런 의미는 아닌 것 같다. 오히려 목장에서 쉬고 있는 양 떼를 떠올려 보면 어떨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정글을 호령하는 맹수들은 들판에 편안하게 머무르지 않는다. 하지만 양을 비롯한 많은 초식동물들을 들판에서 땅을 차지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2.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거리로 삼으라.
너희는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 복을 받는 자로다
하늘은 여호와의 하늘이라도
땅은 사람에게 주셨도다
죽은 자들은 여호와를 찬양하지 못하나니
적막한 데로 내려가는 자들은
아무도 찬양하지 못하리로다
(시편 115:15-17)
시편 115편을 입체적으로 읽어 보면 세 곳의 공간이 나온다. 하늘-땅-적막한 데가 그것이다. 죽은 자들이 가는 곳이 바로 적막한 데이다. 그렇다,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 살아 있는 자에게 땅을 주신다. 현재 땅에 살아 있는 우리는 살아 있음에 감사하며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것에 감사하며 살아가야 한다. 이번 주가 새롭게 시작되고, 아침에 눈을 뜨고, 일을 할 수 있고, 기도할 수 있고, 일상의 모든 일들을 할 수 있는 이 '살아있음'의 상태가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말이다.
오늘의 시편은 땅에서 사는 것뿐 아니라, '땅에 사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거리로 삼으라'라고 말씀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단어는 '성실'이 아닌가 싶다. 이 변화무쌍한 세상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분의 성실하심을 보여주신다. 자연의 대법칙을 생각해 보자.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호세아 6:3)
개역개정 성경에서 '어김없나니'라는 표현은 개역한글 성경에서는 '일정하니'라고 되어 있는 것을 보면 하나님의 성실하심이 느껴진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노아의 홍수 이후, 인간들에게 다시는 이 정도 규모의 홍수를 내리지 않을 것을 약속하시면서 하나님의 성실하심을 보여주신다.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
(창세기 8:22)
다시 생각해 보면, 하나님은 항상 자연의 법칙을 통해 땅과 일하고 계신다.
하나님의 성실하심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또 다른 단어는 '미쁘다'다. 성경에서 종종 '하나님은 미쁘시다'는 말을 접하게 되는데, 이때 '미쁘다'라는 말이 하나님은 성실하시다는 말과 비슷하다. '미쁘다'는 말은 국어사전에 따르면, '믿음성이 있다' 또는 '믿음직스럽다'라는 의미다. 영어 성경에서도 'faithful'이라고 되어 있다. 이 'faithful'이라는 단어를 설명하는 좋은 영어 단어는 'loyal'이다. 즉, 충성스럽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충성스럽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충성스럽다고? 우리가 하나님께 충성스러워야 하는데? 그런데 사실 우리는 변덕이 죽 끓듯 하여 매일 마음의 생각을 호떡 뒤집듯이 바꾸는 반면 하나님은 일관적이시고 성실하시고 심지어 열심이 있으시다.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이다
(이사야 37:32)
우리가 땅에서 사는 동안 하나님은 우리에게 늘 성실하시고 미쁘시고 열심이 있으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만물의 주관자가 되시는 하나님을 성실하게 믿고 따르며 살 수 있는 것이다. 오늘 시편 기자의 말처럼 내 눈앞에 나타나는 일시적인 악인들 때문에 일희일비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실을 기대하며 하나님을 소망하면 땅을 차지하게 된다.
이 '땅'은 또 무슨 의미일까? 하나님께서 하라고 주신 우리의 사명이 아닐까? 거창한 꿈도 있을 수 있지만 지금 하나님이 주신 사명, 혹은 어머니로, 혹은 자녀로, 혹은 학생으로, 혹은 직장인으로 지금 주님이 부르신 그곳이 우리의 땅이 아닐까? 이 땅에서 살아 있는 동안 성실하게 사는 것이 우리의 본분일 것이다.
3. 죽음을 기억하라.
메멘토 모리라는 말을 아는가? 라틴어 Memento Mori는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이다. 고대 로마에서 개선하는 장군의 행렬 뒤에 노예들을 배치해 메멘토 모리라고 외치게 했다고 한다. '지금은 개선장군이지만 너도 곧 죽는다'라는 사실은 인지시켜 겸손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오늘 본문의 '땅에 머무는 동안'이라는 표현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머무는 기간이 언젠가는 끝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메멘토 모리를 생각하게 하는 부분이다.
하나님께서는 땅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셨다. 일단 인간들이 먹을 것을 생산해야 하는 생명과 직결된 부분도 있지만 재산과 직결되어 부동산으로서 이용되기도 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영구적인 소유를 허락하지는 않으셨다. 우리는 머무는 것이지 이곳에 영원히 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사역을 하는 곳이 있다. 바로 예수원이다. 강원도 태백의 산골에 위치한 예수원은 성공회 신부님이시던 대천덕 신부님께서 세우신 곳으로 기독교 신자들도 많이 찾는 중요한 기도 공동체다. 무궁화호 기차를 타고 태백역에서 하차한 후에도 태백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예수원에 가는 버스를 타고 한참을 간다. 그리고 오르막길을 하염없이 올라야 겨우 도착한다. 오르막길에는 예수원의 상징과도 같은 조형물을 볼 수 있는데 바로 '토지는 하나님의 것이라'라고 레위기 25장의 말씀을 사용하며 만든 조형물이다.
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
너희는 거류민이요 동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레위기 25:23)
오늘도 한 주가 시작되었다. 땅에 머무는 시간이 얼마나 될지 알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이 시간이 언젠가는 끝난다는 것이다. 내가 땅에 머무는 이 시간 동안 하나님의 성실은 마치 해가 뜨고 해가 지듯이 나에게 임하고 있다. 게으르고 앞을 모르는 나는 성실하신 하나님만을 믿고 성실하게 주님을 소망하며 사는 것이 행복하게 사는 것이리라.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시편 3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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