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부터
요단 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시니
요한이 말려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3:13-17)
예수님께서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기 전 세례 요한에게 나와 세례를 받으려고 하셨다. 이미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 먼저 왔다는 자신의 소명을 잘 알고 있었던 세례 요한이지만 세례를 요청하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에 자신이 세례 주는 것을 머뭇거렸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라고 말씀하시면서 세례를 받으신다.
어찌 보면 성경은 이렇게 '허락한' 사람들을 통해 이루어진 하나님의 일들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마태복음에서만도 가깝게는 처녀로서 '아이를 낳는' 돌에 맞아 죽을 각오를 한 마리아, 헤롯의 위협에 아이와 어머니를 보호하기 위해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이집트로 다시 이스라엘로 도망 다니던 요셉,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임을 앎에도 불구하고 세례를 주는 일에 순종한 세례 요한을 볼 수 있다. 이후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 사도 바울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지금 기독교 역사를 쓸 수 있도록 해준 역사 속 많은 순교자들에게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모든 역사는 자신의 생각과 경험과 지식과 믿음 까지도 뛰어넘는 일에 기꺼이 순종으로 허락한 이들에 의해 이루어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1. 하나님의 일을 '허락한' 구약의 선지자들
구약의 대표적인 선지자 예레미야 역시 하나님께서 선지자로 부르셨을 때 자신이 말할 수 없는 사람이라며 거부한다.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내가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하니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말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령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너는 그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고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예레미야 1:5-9)
남유다의 운명이 바벨론의 침략으로 풍전등화와 같고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는 이집트나 앗수르를 의지하려고 하던 지도자들, 이에 동조한 선지자들에 의해 거짓 예언이 난무하고, 하나님의 심판의 칼이 코앞에 다가와 있던 시절, 하나님께서 제사장 힐기야의 아들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신다.
우리가 흔히 눈물의 선지자라고 말하는 예레미야는 이후 유대인들의 희망회로와 상관없이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전파하면서 옥에도 갇히고 구타를 당하는 등 많은 핍박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일을 멈추지 못하는 자신의 상황에 대해 예레미야는 이렇게 토로한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권유하시므로
내가 그 권유를 받았사오며
주께서 나보다 강하사
이기셨으므로
내가 조롱거리가 되니
사람마다 종일토록 나를 조롱하나이다
내가 말할 때마다 외치며
파멸과 멸망을 선포하므로
여호와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내가 종일토록 치욕과
모욕거리가 됨이니이다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예레미야 20:7-9)
예레미야의 앞서 북 이스라엘의 멸망을 앞두고 선지자도 제사장도 아니었던 목동 아모스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순종으로 허락한다.
아모스가 아마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선지자가 아니며
선지자의 아들도 아니라
나는 목자요 뽕나무를 재배하는 자로서
양 떼를 따를 때에
여호와께서 나를 데려다가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라 하셨나니
(아모스 7:14-15)
우리 입장에서 보면 순종은 하나님의 강요에 의해 이루어지는 듯한 모습이 보일 때도 많다. 하지만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의지로 기꺼이 하나님을 선택하는 자들에게서 나오는 것은 아닐까? 아브라함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에서 우리는 그 순종의 의미를 짐작할 수 있다.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로마서 4:18)
여기 로마서의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다'는 표현을 NIV 성경에서는 'Against all hope, Abraham in hope believed'라고 표현하고 있으니 모든 소망, 인간이 기대할 수 있는 것에 반하는 것을 믿었다는 뜻이리라.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를 의로 여기셨다고 말씀하신다.
2. 성령의 일을 허락한 사도 베드로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동안 가장 가까이 수제자라는 말을 들으며 따랐던 베드로 역시 자신이 사도로서 복음을 들고 땅 끝까지 가기 위해서는 자신의 경험과 지식과 관습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허락의 과정이 있어야 했다.
이튿날 그들이 길을 가다가
그 성에 가까이 갔을 그 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그 시각은 제 육 시더라
그가 시장하여 먹고자 하매
사람들이 준비할 때에
황홀한 중에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종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더라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어라 하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지 아니하였나이다 한대
또 두 번째 소리가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
그 그릇이 곧 하늘로 올려져 가니라
(사도행전 10:9-16)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성령을 받고 예루살렘, 유대, 사마리아, 그리고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하셨으나 (사도행전 1:8), 성령을 받고 예루살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던 베드로. 당시 베드로는 욥바, 지금의 이름으로는 텔아비브 야파에 해당하는 지역에 있었다. 즉, 예수님께서 땅 끝까지 가라는 명령에 대해 머리로는 알았지만 가슴으로는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 같다. 유대교의 전통이 뿌리 깊게 남아 있던 베드로에게 이탈리아 군대의 백부장 고넬료라는 사람을 보내기 위해 이와 같은 환상을 주신 것이다. 베드로는 세 번의 걸친 이 환상을 통해 당시만 해도 이방인과 겸상 조차 할 수 없었던 뿌리 깊은 유대 문화의 틀을 깨 보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3. 허락한 사람들을 사용하시는 주님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많은 군중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모습을 보고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소위 율법의 이름으로 예수님에게 시비를 걸곤 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마태복음 23:23)
심지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입성할 때조차 예수님께 환호하는 사람들을 조용히 시키라고 요청하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하니
무리 중 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선생이여 당신의 제자들을
책망하소서 하거늘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19:38-10)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전지전능,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이다. 그런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일하시기 위해 우리를 부르셨다. 그리고 우리에게 자유의지라는 것을 주셨다.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는 것이 힘으로 하려면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우리를 동역자 삼으신 주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방식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려 하시니 얼마나 큰 은혜인가(고린도전서 1:21).
그렇게 순종으로 허락한 세례 요한은 결국 예수님께 세례를 베풀게 되고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예수님 위에 임하시는 모습을 보게 되고 하늘로부터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된다.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3:16-17)
'Coram Deo'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침묵상]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 거리로 삼을지어다(시편37:3-11) (0) | 2023.06.26 |
---|---|
[역사서] 역사서를 시작하기 앞서(사도행전 13:20-23) (0) | 2023.06.22 |
[아침묵상]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하는 마음(시편 84:9-12) (0) | 2023.05.23 |
[마태복음] 세례요한,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마태복음 3:1-12) (0) | 2023.05.15 |
[아침묵상]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요한복음 15:1~7) (0) | 2023.05.0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