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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ram Deo

예수 부활하셨다!!

by 위즈덤바이어 2023. 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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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부활하셨다.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후 3일 만에 예수님이 사망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신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은 어떤 의미이며 우리에게 부활을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알아본다. 

 

Jesus is risen!!

 

1.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

덴마크의 철학자 키르케고르는 인간은 '죽음에 이르는 병'에 걸렸다고 말했는데, 그 병은 성경에서 말하는 원죄로 해석할 수도 있고 절망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결국 인간은 죽음에 이른다는 것이다. 어쩌면 인간의 실존은 한평생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일 수도 있다.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히브리서 2:15)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은 이렇게 한평생 죽기를 두려워하여 종 노릇 하는 우리들을 해방하기 위함이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의 부활은 나의 부활로 바로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의 사건은 요한복음 11장, 나사로의 죽음과 부활 사건으로 예표 된다. 

죽은 지 나흘이 넘어 이미 무덤에서 시체의 부패가 시작된 상태의 나사로를 살리겠다는 예수님 앞에 마지막 날의 부활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마르다. 언뜻 보면 그의 믿음이 맞는 것 같지만, 사실 마르다는 과거의 예수님, 그리고 미래의 예수님 만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마르다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믿음은 지금, 바로, 여기서의 믿음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한복음 11:25-26)

예수 부활 하셨다. 출처 : Pixabay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삼 년 반이라는 시간 동안 함께 하셨지만 본인이 십자가에 달려 고난을 받고 돌아가실 것이라는 말씀을 하기 위해서

어느 정도 제자들이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리셨다. 베드로를 통해 예수님이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을 받은 후부터, 예수님은 자신이 장차 받으실 고난과 영광에 대한 이야기를 하신 것이다.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마태복음 16:21)

 

안식 후 첫날,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살로메가 예수님의 시체에 향을 바르기 위해 올라갔다가 무덤에 아무도 없는 것을 발견했다. 너무나 놀란 그들 앞에 흰 옷 입은 천사가 나타나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고 말한다.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마가복음 16:6-7)

 

이미 예수님은 자신의 예정된 십자가 고난과 부활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계셨지만 제자들은 막상 이 일이 있은 후에, 깨닫기 시작한다. 

 

2. 나의 부활

오늘을 사는 우리 크리스천들 역시, 과거에 부활하신 예수님, 그리고 장차 재림하실 예수님에 대한 믿음은 차고 넘침에도 지금, 바로, 여기서의 부활에 대해서는 상관없는 것 같은 태도를 취할 때가 많다. 

하지만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로 부르심을 받은 이상, 이 세상에서 부활을 실제적으로 믿지 못하는 것은 오히려 우리에게 많은 손해다. 

 

이에 대해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를 통해 잘 설명하고 있다.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고린도전서 15:16-19)

 

크리스천이라는 이유로 보다 절제하고 보다 인내하며 살아가는데, 그 와중에 부활을 믿지 못한다면 우리가 겪는 많은 인내의 시험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라 억지로 견디는 것이 되니 세상 것도 취하지 못하고 영적인 것도 취하지 못하는 어리석음 중에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이리라. 

 

요한계시록에서도 이렇게 세상과 주님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는 믿음을 질책하셨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요한계시록 3:15-16)

신앙생활을 하며 동시에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앞에는 항상 선택이 놓여있다. 

세상을 택할 것인지 예수님을 택할 것인지. 세상의 방식을 택할 것인지 하나님의 말씀을 택할 것인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모든 선택을 세상으로 한다면, 세상도 갖지 못하고 예수님도 갖지 못하는, 빈 손이 되는 것이다.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는

현세에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18:29-30)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예수님을 늘 선택하는 일은 위에 말씀하신 것과 같이 현세와 내세의 복을 두루 받을 수 있는 방법이다. 

이도 저도 못하고 결국에는 믿는다고 하면서 믿음을 선택하지 않는 자들의 최후는 스스로를 가장 불쌍하게 만드는 일일 뿐이다. 

 

3. 예수님의 부활을 나의 부활로 적용하는 방법

그렇다면 어떻게 예수님의 부활을 나의 부활로 적용할 수 있을까?

사도 바울은 이 방법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한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2:20)

 

바울은 매일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리하여 결국 자신이 아닌 예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삶으로 매일 부활하는 삶을 살게 된 것이다.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린도전서 15:31)

 

예수님이 아버지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함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 것처럼, 바울 역시 예수님의 십자가를 함께 지고 부활함으로 예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요한복음 17:4-5)

 


예수님은 부활로 인류의 구원을 완성하셨다. 단번에, 완벽하게 인류의 구원의 문제를 해결하신 것이다. 

다시는 죽음을 두려워하여 종노릇 하지 않기 위해, 온전하신 해방을 이루신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의 부활을 나의 부활로 적용하지 못하면 그로 인해 부활의 생명도 누리지 못하고 인생의 고난만을 겪는 어려움을 피할  수 없다. 오늘 부활절을 맞아, 나의 십자가, 나의 죽음 그리고 나의 부활로 받아들여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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